 |
최은수 교수 미장로교 및 아르메니아 조지아 연구소 대표 |
미 남장로교 파송 전라도 최초의 서양의사인 드류 유대모 선교사가 1894년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전라도의 선교 스테이션 선정을 위한 답사여행에 나섰다. 버지니아주 햄든 시드니 대학 직속 후배인 레이놀즈 이눌서 선교사와 동행하였다. 목포권과 관련하여, 드류 유대모 선교사의 인문학적 식견이 주목한 곳이 목포였다. 그는 레이놀즈 선교사와 함께한 여정을 마친 후, 별도로 목포, 신안섬들, 그리고 영산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장차 광주의 중요성까지 간파하였다. 목포선교부가 개설된 후, 유지벨 선교사 가족도 드류 유대모 의료 선교사가 목포를 자주 방문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여러차례 밝히기도 하였다. 가족의 안전과 건강을 고려하였기 때문이다.
목포선교부에 부임한 오웬 오기원(오목사) 목사이자 의사 선교사도 드류 유대모 선교사와는 친형제 보다도 더 가까운 사이였다. 드류 유대모 선교사는 우선적으로 남자 의사 1명, 여자 의사 1명, 여자 간호사 1명을 긴급하게 파송해 달라고 강력하게 기도하며 요청하였었다. 그 기도의 응답으로 잉골드 의사 선교사가 전주에, 오웬이 목포에, 케슬러 간호 선교사가 군산에 부임하였던 것이다.
얼마전에, 올해로 98세 되시는 드류 유대모 선교사의 손녀가 필자에게 전화를 하셨다. 베티 여사는 드류 유대모 선교사의 장녀인 루시 드류의 딸이다. 그녀는 전라도에서 선교사로 사역한 할머니와 한국에서 태어나 전라도에서 자란 어머니 밑에서 성장하였다. 베티 여사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예수사랑 하심은’ 찬양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전라도 사투리가 모국어인 어머니를 두었으니 말이다. 베티 여사는 전화를 하시면서 필자에게 자신의 집에 다녀갔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필자가 전화를 받은 다음날 시간이 돼서 5시간을 운전해서 방문했다.
할머니 선교사와 함께 가족이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서 베티 여사는 최고령이다. 교회가 오래되다보니 병원이나 요양원에 있는 성도들이 상당수이다. 하지만 최고령인 베티 여사는 그 많은 연하의 교인들을 위해 기도하며 지내신다. 베티 여사의 큰아들인 스티브 장로님도 상당히 아팠는데 지금은 많이 회복되어 보였다. 베티 여사는 새로운 자료를 보여주며 필자와 대화 나누는 것을 무진장 좋아하신다. 아울러 필자가 카카오 비데오를 통해 연결하는 의료선교 관련자분들과의 만남과 대화도 영광으로 생각하신다. 이번에는 목포 의료선교와 관련하여 두분과 연결하여 유익한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이런 교회 역사적인 연결이 전라남북도에 유무형의 큰 유익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