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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발행인 박정완 장로 (목포중부교회) |
‘진실’이라는 단어 앞에 서면 언제나 마음이 숙연해진다. “주님의 뜻에 따라 살기를 원합니다”라는 고백은 이미 오래전 내 삶의 깊은 고백이 됐다. 어디서나 나를 드러내기보다, 그저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함’의 테두리에 머물기를 소망하며 하루를 살아간다.
어느 날 오전 미팅 중, 한 장로님으로부터 나라는 존재 때문에 힘들었다는 푸념을 들었다. 큰 충격 속에서 나 자신을 깊이 되돌아보게 됐다.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할 때, 일이 온전히 잘 풀리기를 바라는 순수한 열정 때문이었다. 남의 부탁을 받으면 내 일을 뒤로하고 이웃의 필요를 우선순위에 두는 습성이 항상 몸에 배어 있다. 소위 봉사라는 이름하에 기쁘게 이어온 삶이다.
도우려는 마음으로 내 능력 안에서 처리했던 일들이, 상대방에게는 자존심을 훼손하는 깊은 상처가 됐다니 참으로 몸 둘 바를 모를 일이었다. 어떤 대가나 권위, 영역 침범의 의도가 전혀 없는 순전함의 발로였기에, 그것이 오해와 악담으로 돌아오는 현실은 가슴을 아리게 했다.
선한 중심이 온전히 전달되지 못하는 인간관계의 한계 앞에서 묵묵히 기도할 뿐이었다.
그러던 중 병상에 계신 목사님으로부터 급히 통화를 원한다는 전갈을 받았다. 이틀 전 이미 가족들을 모아놓고 마지막 기도를 마쳤다는 절박한 상황임을 알고 있었기에, 예배를 마친 후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과거의 당당함은 찾아볼 수 없이 수척해진 목사님을 뵙고 간절히 기도한 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곁에 있던 사모님은 “목사님과의 깊은 신뢰가 있기에 가장 먼저 찾으신 것 같다. 아마 장례 절차를 부탁하려는 마음일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히셨다.
힘겹게 이어지는 병상 일기를 듣던 중, 문득 그 목사님과 오랜 시간 서먹하게 지내온 한 절친 목사님의 얼굴이 스쳤다. 마지막 순간, 얽힌 관계의 실타래를 풀어주고 싶어 조심스레 의사를 타진했다. 이미 청력을 상실한 목사님은 눈물 어린 눈으로 바라만 보실 뿐이었다. 사모님이 메모판에 “김 목사님 오시라고 할까요?”라고 적어 보이자, 목사님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셨다. 곧바로 전화를 했다, 연락을 받은 목사님은 미팅이 끝나는 대로 흔쾌히 달려오겠다고 답했다.
나를 신뢰하기에 마지막 순간을 가감 없이 공유해 준 병상의 목회자, 그리고 임종을 앞두고 묵은 감정을 풀고자 용기를 낸 목회자의 모습에서 진정한 천국의 정감을 보았다. 끊어질 뻔했던 관계를 사랑의 끈으로 다시 연결할 수 있는 지혜와 통로가 될 수 있었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늦은 저녁, 면회를 마친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덕분에 충분한 위로와 화해의 시간을 가졌다. 참 감사하다. 앞으로도 지역사회를 밝히는 통로가 되어달라”는 격려였다. 오해로 얼룩졌던 개인적인 마음의 상처가 눈 녹듯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우리의 작은 ‘신뢰의 샘’이 순수한 ‘열정의 다리’를 건널 때, 비로소 해묵은 감정을 녹이는 ‘우정의 강물’로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화해와 믿음으로 상생하는 건강한 신앙 공동체를 소망하며, 오늘도 주의 은혜가 온 누리에 가득하기를 묵묵히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