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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제1부 어머니는 바보야 42회

2026-07-08 15:36 | 입력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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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
윤기
전) 목포공생원 원장
공생복지재단 회장
- 1942년 목포 출생
- 중앙신학교(現 강남대학교) 사회사업학과를 졸
- 아동복지시설「목포공생원」의 원장
- 정신지체장애인시설「공생재활원」을 설립
- 한국사회복지사협회 부회장‧회장(1987年~2001年)을 역임
- 1989년 일본 최초의 재일동포를 위한 노인복지시설「고향의 집」을 건립
- 1978년 제22회 소파상등 수상다수
- 현재 일본 사회복지법인「마음의 가족」이사장
- 저서는《김치와 우메보시》, 역서는《괴짜총리 고이즈미, 흔들리는 일본》 《고령사회 이렇게 살아보세》

윤문지
공저자 윤문지(타우치 후미애)
공생복지재단 이사장

-1949년 일본 오사카 출생
- 쿄토 도시샤(同志社)대학 사회복지학과를 졸
- 1972년, 한국 목포로 건너와 목포공생원 생활지도원 역임
- 현재 일본 사회복지법인「마음의 가족」 이사, 사회복지법인 윤학
자공생재단 이사, 사회복지법인 공생복지재단 이사장으로 활동,
-제3회 여성휴먼다큐멘터리 대상에《양이 한 마리》로 입선
- 1982년《나도 고아였다》로 일본 크리스천신문 제5회 아카시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

출처: 호남기독신문사 (www.honamcn.com)

어머니가 쓰러지다

1964년 11월 어머니는 장기 여행에서 돌아온 피로를 풀 새도 없이 목포 시장을 방문했다.
김 시장이 의자를 권했다.
“정말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격의 없이 맞이하는 김 시장에게 어머니는 “아닙니다.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도와주겠다는 확약이 없었습니다.”라고 답하고 싶었다.
김 시장은 칭찬을 그치지 않았다.
“후원회 발족과 이사 명단을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일본의 거물급이 대거 끼어 있더군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속담처럼 하나님께서 이제까지의 윤 원장의 노고를 인정하신 거라 믿습니다.”
김 시장은 목포시의 경사처럼 기뻐했다. 어머니께는 그것이 큰 부담이었다.
가을도 깊어지고 공생원 앞바다는 푸른빛을 한층 더해 갔다. 유달산은 하늘을 향해 그 웅장한 자태를 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항상 이쪽에서 말을 건네기만 하면 위로해 주고 피곤마저 덜어주던 대자연의 모습마저도 지금은 어쩐 일인지 시들하고 무관한 사물처럼 생각되었다.
‘아! 피곤하구나.’
무리한 여행 때문일까?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어머니는 요즘 심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자리에 누워 쉴 여유가 없었다. 먼저 호의를 보내준 분들께 감사장을 써야 했다.
편지를 쓰고 있는 어머니에게 정 총무는 A 씨에게는 이것을, B 씨에게는 저런 사업을 부탁하면 효과가 있을 거라며 주문에 열을 올렸다.
적절한 코치라고 볼 수도 있었으나 어머니로서는 괴로운 주문이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몸과 마음, 그 모든 것을 혹사해 가며 목전의 현실과 부딪치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의 식량이 떨어지면 스스로 리어카를 끌고 마을로 나가 찬거리가 될 만한 것을 구하러 다녔다. 아이가 병이 나면 둘러업고 이곳저곳 병원을 쫓아다니는 열성, 단지 그것만이 전부였다. 어머니는 고아들을 키우는 일을 사업이란 말로 총괄하는 데 심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정 총무가 이것저것 코치했으나 이해되지 않는 일도 많았다.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정 총무의 말을 듣고 있으면 당장에라도 원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단호히 거절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발목의 힘이 빠지고 몸이 허공으로 치솟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순간 의식을 잃고 말았다. 어머니가 의식을 회복한 것은 그로부터 네 시간 뒤 박동철 내과에서였다.
박동철 박사의 권유로 어머니는 서울 세브란스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정 총무가 달려갔다.
“몸이 극도로 쇠약해지셨습니다. 기력이 빠져서 쓰러진 겁니다. 당분간 푹 쉬시면 좋아질 거라고 하셨습니다.”
정 총무는 의식을 되찾은 어머니에게 진단 결과를 이야기했다. 걱정할 것 없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안정을 취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수술이 필요했다.
“어머니! 내일 수술을 한대요. 세브란스 병원에서 제일 훌륭하신 김 박사님이 직접 집도해주신대요. 간호사 얘기로는 김 박사님은 바쁘신 분이어서 좀처럼 수술을 받기 힘들다고 하더군요. 김 박사님이라면 염려하실 것 없어요.”
나는 어머니를 안심시키려 애썼다. 겉으론 평온을 가장하면서도 내심 불안을 떨칠 수가 없었다. 수술을 앞둔 어머니는 오히려 입가에 웃음을 띠고 안정하신 듯 보였다.
세 시간에 걸친 폐종양 제거 수술은 성공이었다.
어머니의 입원 소식을 듣고 택시 운전사로 일하고 있던 재균이가 달려왔다.
“어머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어머니가 이런 대수술을 받으실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큰소리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어머니, 이런 때야말로 힘이 돼 드려야 하는 건데 아무런 도움도 못 돼 정말 죄송해요.”
치료비에 써달라며 재균은 5만 원을 놓고 갔다.
조금 있으려니 금호동에 사는 복룡이, 석오, 태범 등 이젠 성인이 된 아이들이 잇달아 모여들었다. 재균이가 연락했던 것이다.
모두가 넉넉지 못한 생활에 시달리면서도 어머니의 입원비를 걱정했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어머니는 바로 이런 것들이 인생의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믿음직한 자식을 많이 갖고 있음을 진심으로 감사해했다. 2개월에 걸친 병원 생활을 마치고 어머니는 아이들이 기다리는 공생원으로 돌아왔다.


(다음 43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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