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명: 뉴스홈 > 오피니언 > 칼럼 기사 제목:

[기획연재] 제1부 어머니는 바보야 46회

2026-09-09 16:08 | 입력 : admin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X 공유
  • 카카오톡 공유
  • 링크 복사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X 공유
  • 카카오톡 공유
  • 링크 복사

윤기
윤기
전) 목포공생원 원장
공생복지재단 회장
- 1942년 목포 출생
- 중앙신학교(現 강남대학교) 사회사업학과를 졸
- 아동복지시설「목포공생원」의 원장
- 정신지체장애인시설「공생재활원」을 설립
- 한국사회복지사협회 부회장‧회장(1987年~2001年)을 역임
- 1989년 일본 최초의 재일동포를 위한 노인복지시설「고향의 집」을 건립
- 1978년 제22회 소파상등 수상다수
- 현재 일본 사회복지법인「마음의 가족」이사장
- 저서는《김치와 우메보시》, 역서는《괴짜총리 고이즈미, 흔들리는 일본》 《고령사회 이렇게 살아보세》


공저자 윤문지
공저자 윤문지(타우치 후미에)
-1949년 일본 오사카 출생
- 쿄토 도시샤(同志社)대학 사회복지학과를 졸
- 1972년, 한국 목포로 건너와 목포공생원 생활지도원 역임
- 현재 일본 사회복지법인「마음의 가족」 이사, 사회복지법인 윤학
자공생재단 이사, 사회복지법인 공생복지재단 이사장으로 활동,
-제3회 여성휴먼다큐멘터리 대상에《양이 한 마리》로 입선
- 1982년《나도 고아였다》로 일본 크리스천신문 제5회 아카시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



어머니와 나는 노리타니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족과 헤어져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이 우리뿐만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우리도 아버지의 귀가를 얼마나 학수고대했는지 모른다. 남의 일이 아니었다.
두 개의 이름과 두 개의 조국을 가진 노리타니 씨 부모님의 안부와 무사를 비는 간절한 마음이 이해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부모님을 찾아 달라고 부탁하는 절박한 심정이 가슴에 와닿았다.
나는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참고가 될 만한 사항을 자세히 알아보았다. 살아 계시면 연세가 얼마나 되겠냐고 물으면서 김 씨, 박 씨, 이 씨 같으면 어렵겠지만 차 씨는 희소한 성이므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위로했다.
나의 질문이 끝나자 그는 편지 한 통을 내밀며 읽어달라고 했다. 순간 일본어일까 봐 덜컥 겁이 났다. 일본어를 모르는데 어떻게 읽어야 하나?
나는 편지를 받아 매우 자연스럽게 어머니에게 넘겨주었다. 어머니는 편지를 펼치더니 다시 내게 돌려주셨다. 잘 보니 한국어로 씌어 있었다. 한국 사람이면서 일본인이 되어, 한국말을 모르는 교포에게, 한국 사람이면서 일본인이 되어 한국말밖에 못 하는 내가 그 편지를 읽게 되었다.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또 있겠는가?
편지를 읽기 시작한 나는 곧 입을 다물고 말았다. 순간 못할 이야기를 한 것처럼 얼굴이 빨개졌다. 어머니도 물론 놀랐다.
그 편지의 겉봉에는 일본에 사는 삼촌 ‘노리타니 씨 앞’이라고 쓰여있었다.
편지의 서두부터 전율하는 공포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위대하신 김일성 수령의 특별한 배려로 저희 가족은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으니 염려 마십시오. 저희는 한시바삐 박정희 도당을 쳐부수고 미 제국주의 압제하에 신음하고 있는 남조선 동포를 위해 통일의 날이 오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삼촌에게 보낸 조카의 편지에 위대한 김일성 수령이 무엇 때문에 튀어나오는 건가? 박정희 도당이라니 그것은 무슨 뜻인가? 그리고 미 제국주의의 압제하에 신음하는 남조선 동포는 또 뭔가?
생각지도 못한 극렬한 내용에 나는 흥분을 가누지 못했다. 그러나 나보다도 더 당혹해하고 무거운 기분에 안절부절못하는 것은 노리타니 씨 쪽이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 북한을 택할 것인가, 부모 형제가 남하한 남한을 택할 것인가로 늘 번민한 터였다.
“니가타(新潟)에서는 정기 화물선이 북한으로 왕래하고 있습니다. 부모님과 친척들의 소식이 듣고 싶어 아는 사람을 통해 고향의 옛날 주소로 편지를 보냈는데 그 답장이 이것이죠.”
나는 그 편지가 과연 조카의 것인지 의심스러웠지만 회화가 불가능한 터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는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세계의 어느 나라엘 가도 공산 체제보다는 민주 체제 국가가 훨씬 풍족하고 복된 생활을 누리고 있는데 어째서 한국은 예외냐? 왜 거렁뱅이, 고아, 도둑이 득실거리는 가난한 나라인 거냐?”며 비분을 억누르지 못했다. 그는 한국의 좋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만 물었다.
초면인 그에게 한꺼번에 진실을, 그의 조국을 이해시키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젊은 혈기의 나는 그에게 조국을 있는 그대로 알려야 한다고 결심했다.
노리타니 씨와 만난 다음 날은 무척 바빴다. 어머니는 일찍 일어나셨다. 어느 틈에 머리를 손질하셨는지 치마저고리 차림의 어머니가 아름답게 보였다. 아무리 뜯어봐도 사회사업가로는 보이지 않는다. 평범한 결혼을 하셨더라면 분명히 행복한 가정의 현모양처가 되셨을 텐데 하며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자니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암이란 무서운 병마를 안고 일본까지 와서 텔레비전 출연이며 생면 부지의 사람과 만나고 있는 어머니.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는 도쿄의 중심부 정부 청사가 늘어서 있는 카스미가세키(霞ヶ関)에 도착했다.
토라노몬(虎ノ門)에서 문부성(文部省)과 대장성(大藏省)을 따라 비탈을 올라가자 쿠보회관(久保會館)이 나오고, 그 안쪽으로 일본 사회사업 회관이 있었다.
일본 사회사업 회관에는 사회복지 협의회며 노인 단체, 복지 신문사 등의 사무실이 있었다. 중앙 공동 모금회는 5층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지역사회 개발학을 수강했지만, 아직 한국에는 모금 전문 단체가 없었다. 대규모 수해나 화재 등의 재해가 발생할 시 긴급복구 재해대책 위원회가 설치될 뿐이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이끌려 그 공동 모금회를 방문했다. 이 안에는 다우치 후원회(田內後援會) 연락 사무소도 있었다.
공동 모금회에서는 20여 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었다. 모두 어머니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키가 크고 서양인같이 멋진 코를 가진 신사가 의자에서 일어나며 어머니를 맞았다.
두 사람이 정중하게 인사를 나눈 후 그 신사는 문득 내 존재를 의식한 듯 어머니에게 물었다.
“졸원생(卒園生)입니까?”
당시 빼빼 말라 있던 나와 둥그스름한 얼굴의 어머니와는 조금도 닮지 않았다. 모자지간(母子之間)으로 보이지 않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어머니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장남이에요. 중앙신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습니다.”
“실례했군요.”
크게 실언이라도 했다는 듯 장신의 신사 오노(小野) 씨는 한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오노 씨의 책상 뒤편 벽에는 다우치의 연락처와 쉽게 눈에 띄도록 전화번호를 적어둔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오노 씨는 조그만 일도 그냥 지나치지 않은 성격 같았다. 예술가 특유의 섬세함도 느껴졌다. 이것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오노 씨는 연주자로서도 널리 알려진 분이었다.
(다음 47회에 계속)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X 공유
  • 카카오톡 공유
  • 링크 복사
Copyrights ⓒ 호남기독신문사 & www.honamcn.com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 더보기 admin
댓글 :0
댓글 등록
0/400
  • 작성자명 |2024.11.14 10:30
    이곳은 댓글 작성한 내용이 나오는 자리 입니다.
1 2 3 4 5
호남기독신문사로고

신문사소개  |  기사제보  |  광고문의  |  불편신고  |  개인정보 취급방침/이용약관  |  청소년보호정책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법인명(주)호남기독신문 제호:주간기독신문 | 등록번호:전남다00311,전나아00300
등록일 : 2011.12.19 | 발행일 : 2012.1.11 | 발행.편집인 : 박정완 | 청소년보호책임자: 박정완 .
주소: 목포시 영산로635,4층 .대표전화l: 061-245-8600| Fax: 061-247-8600 Email: honamcn@hanmail.net | 후원계좌: 농협355-0014-4131-03 ㈜호남기독신문
호남기독신문 은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등을 금합니다 .
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 저작권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
Copyright © 2020 호남기독신문 .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