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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원 원장
(예송음악학원) |
Selfie, 셀피.
휴대전화 갤러리에는 자신을 찍은 사진들이 수두룩하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우리는 스스로를 드러내고 표현하며 뽐내는 데 익숙해졌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셀피’라는 단어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이처럼 자아를 강조하는 문화가 빠르게 확산된 배경에는, 가치와 의미를 외부에서 찾으려는 성향의 증가에 있다.
우리는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의 시선과 인정 속에서 자존감과 의미를 찾으려 한다. 더 많은 ‘좋아요’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전시한다. 여기에 더해 우리는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도파민 홍수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 속에서 크리스천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주일 대예배 시간이었다. 목사님께서 말씀을 전하시는 중,
“잠깐 옆으로 지나가겠습니다.”
조심스럽게 말을 하며 내 옆으로 한 성도가 자리에 앉았다. 나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지만, 그분의 시선이 자꾸 아래로 향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예배가 끝날 때까지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말씀보다 스마트폰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그 장면은 타인의 모습이기보다, 곧 나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처럼 다가왔다.
‘나 또한 은혜의 말씀이 끝나면, 곧바로 일상으로 돌아가 스마트폰이 주는 즐거움에 시간과 마음을 빼앗기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 그 깨어 있음, 그 알아차림 속에서만 비로소 하나님을 향한 시선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세가 광야에 갈 때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다면 과연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었을까? 솔로몬이 모든 문제 앞에서 쉽게 답을 얻을 수 있었다면 성경의 역사는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을까. 우리는 이제 많은 것을 스마트폰에 맡긴다. 스스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일상마저도 인공지능에 의존한다. 삶은 한결 편리해졌지만, 그만큼 신앙의 힘은 약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이 생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무능력하게 창조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자기 형상대로 우리를 지으셨고, 창조의 능력과 함께 무엇보다 생각하는 힘을 허락하셨다.
잠언 23장 7절은 이렇게 말한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우리가 마음에 품는 생각은 결국 삶의 방향과 모습을 결정한다.
지난 1월 22일 방영된 <실화탐사대>에서는 쓰레기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발 디딜 틈 없이 쌓인 쓰레기들로 인해 그곳이 집인지 쓰레기장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그 가운데 한 사람은 사업장을 운영하며 손님을 만날 때면 오히려 활기차 보였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극단적인 삶의 괴리가 생겨났을까.
방송 속에서 눈에 띈 한 가지가 있었다. 더러운 악취와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스마트폰이었다. 삶의 외형은 유지되고 있었지만, 마음과 정신은 이미 방향을 잃고 무너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말씀 대신 SNS를, 묵상 대신 유튜브를, 침묵 속에서 겸손히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시간을 점점 잃어버리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의 시선과 의식은 어느새 가짜 세상으로, 도둑맞은 집중력의 근원이 된 스마트폰으로 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