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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완 목사 (영암벧엘교회, 한국신학목포분교 교수) |
이런 웨슬리의 주장은 소논문(소책자;tracts)과 편지로, 또는 설교로도 전개되었으며 웨슬리는 그의 메소디스트 운동을 통하여 이런 주장을 지속적으로 정치가들에게 호소했다.
웨슬리는 사람을 노예로 쓰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웨슬리는 노예제도에 대해서 언급 하기를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힘을 빌려서 하나님 앞에서 노예제도가 사라질 때까지 일하라"고 하였다. 이런 웨슬리의 영향으로 1780년 미 국 감리교회는 그해 연회에서 노예폐지 결의를 하였다.
이처럼 웨슬리와 메소디스트 신앙공동체들은 그들의 연회를 통해 집단적으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열심이었다. 이러한 지속적인 선교를 통한 노예폐지 운동은 1833년 비로소 승리를 거두었다.
4) '작은 교회'를 통한 노동운동
웨슬리는 감리회(Methodist), 즉 '작은 교회' 중 특히 속회운동을 중심으로 영국의 산업혁명 여명기에 파묻혀 버린 인간성의 존엄한 가치에 대해 항거하면서 소외된 노동자들을 위한 최초의 노동조합 조직에 영향을 주었다. 인류 역사 최초의 노동조합이 영국에서 감리교도들에 의하여 구성된 것이다. 수천 명의 노조 지도자들이 감리교인들이었고, 감리교 설교가들이 노동운동에 앞장섰다. 감리교 연회에서 정치적 문제에 개입하기를 원치 않자 진보적 설교가들과 갈등이 생기기도 했지만 노동운동은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산업혁명 초기의 사회적 분위기는 부인들과 어린이들의 가치가 상당히 낮게 평가되었다. 여기에서 메소디스트들은 각 사람은 모두 고유하고 존엄한 가치를 지니며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심을 외쳤다. 웨슬리는 끊임없이 성서적인 인권회복을 위한 선교를 추진하였 으며, 이것만이 영국을 살리는 길임을 확신하였다.
웨슬리가 살았던 무렵의 사회적 분위기는 인간의 존엄성을 형편없이 무시했는데 특별히 어린이에 대해서는 극도로 악마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