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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원 원장 (예송음악학원) |
서른의 나이에 첫 음악학원을 열었다. 오랜 시간 강사로 일하며 쌓아온 경험과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실 음대를 졸업한 뒤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유학을 가거나 음악학원 개원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생존을 택했고, 학원 개원이라는 꿈을 향해 묵묵히 걸어왔다.
스무 살 무렵,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장학금과 교회 반주자의 도움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했다. 또래들이 여행과 여가를 즐길 때 나는 필사와 연습으로 시간을 채웠다. 주말은 2500원짜리 아메리카노 한 잔을 앞에 두고 성경과 책을 베껴 쓰며 마음을 붙잡았다. 그 작은 습관이 내 안에‘강인함’이라는 기적을 만들어 주었다.
졸업 후 강사로 일하며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피아노 학원의 월급은 매달 15일이었다. 통장을 스치듯 지나가는 박봉의 월급은 늘 빠듯했고 4대 보험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열정적으로 일했지만, 수입이 적었던 까닭에 가족들의 시선도 차갑게 느껴졌다. 그러나 음악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라 믿었기에 내려놓을 수 없었다. 음악 안에는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라 철학과 믿음이 담겨 있었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더 깊이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물아홉의 끝자락 음악학원 인수 기회가 왔다. 나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걸 걸었고 2020년 1월, 드디어 학원을 열었다. 하지만 시작과 동시에 곧 코로나가 터졌다. 교육청의 문자와 강제 휴원, 밀려드는 고정비는 광야와도 같았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우쿨렐레 자격증을 활용해 외부 강의를 이어가며 학원을 지켰고, 결국 시간이 지나 백신이 보급되자 학원은 다시 회복되었다.
예수님께서도 서른에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후 곧바로 광야로 가셔서 40일 동안 금식하시며 사탄의 시험을 받으셨다. 말씀으로 시험을 이기신 뒤에야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셨다. 나 역시 개원 직후 코로나라는 광야를 지나며 믿음으로 버텼다. 그 시간은 단순한 고난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단련하시는 과정이었다.
돌아보면, 광야의 시간은 단순히 힘든 시절이 아니라 믿음을 단련하는 과정이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이기신 뒤 사역을 시작하셨듯, 나 역시 코로나의 광야를 지나며 더 단단해졌다. 고난을 통해 축복이 오는 것이라 여겼는데 사실 그것은 고난을 가장한 축복 그 자체임을 깨달았다.
책에서 읽은 글귀가 떠오른다. 거지처럼 보이는 한 노인이 누더기를 걸치고 남루한 모습으로 서 있었는데, 사실은 천사였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보이는 대로만 판단하기 때문에 불안하고 두려움에 흔들리곤 한다. 그러나 그 속에 감춰진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고난을 가장한 축복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광야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경제적 어려움, 관계의 갈등, 질병과 같은 시험은 우리의 삶을 흔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 광야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자리다. 하나님은 그 시간을 통해 우리를 강하게 빚으시고, 더 큰 사명을 감당할 힘을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