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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어머니는 바보야 34회 출처: 호남기독신문사 (www.honamcn.com)

2026-04-01 16:19 | 입력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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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저자 윤기
공저자 윤 기
전) 목포공생원 원장
공생복지재단 회장 
- 1942년 목포 출생
- 중앙신학교(現 강남대학교) 사회사업학과를 졸
- 아동복지시설「목포공생원」의 원장
- 정신지체장애인시설「공생재활원」을 설립
- 한국사회복지사협회 부회장‧회장(1987年~2001年)을 역임
- 1989년 일본 최초의 재일동포를 위한 노인복지시설「고향의 집」을 건립
- 1978년 제22회 소파상등 수상다수
- 현재 일본 사회복지법인「마음의 가족」이사장
- 저서는《김치와 우메보시》, 역서는《괴짜총리 고이즈미, 흔들리는 일본》 《고령사회 이렇게 살아보세》가 있다
출처: 호남기독신문사 (www.honamcn.com)


공저자 윤문지(타우치 후미애)
공생복지재단 이사장
 
-1949년 일본 오사카 출생
- 쿄토 도시샤(同志社)대학 사회복지학과를 졸
- 1972년, 한국 목포로 건너와 목포공생원 생활지도원 역임
- 현재 일본 사회복지법인「마음의 가족」 이사, 사회복지법인 윤학
자공생재단 이사, 사회복지법인 공생복지재단 이사장으로 활동,
-제3회 여성휴먼다큐멘터리 대상에《양이 한 마리》로 입선
- 1982년《나도 고아였다》로 일본 크리스천신문 제5회 아카시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
출처: 호남기독신문사 (www.honamcn.com)







호적 등본

 

그러나 일본에서 호적 등본이 도착하기까지 나는 초조와 불안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과연 일본에 내 호적이 있긴 있는 건가? 열아홉 살이 될 때까지 일본에서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는 것도 이해가 안 가고, 또 내가 전혀 알지 못했다는 사실도 이상했다. 혹 일본에도 호적이 없다면 나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국제 고아가 아닌가? 어머니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워낙 고생만 하시다 보니 노망이 드신 건가?

나는 기도했다. 부디 내가 일본인이 아니기를, 분명 한국인이기를.

주위 친구들의 시선도 왠지 달라진 것 같아 거리에 다니는 일마저 꺼려졌다. 도무지 마음을 안정시킬 수 없었다.

나는 바닷가로 나갔다. 바다를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고하도와 아득한 바다를 보고 있노라니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제기랄!”

중얼거렸다.

일본인이면 어떻고, 한국인이면 무슨 상관이냐. 나는 다만 한 인간일 뿐이다. 하나님의 자녀인 거야.”

어느새 입학 수속 마감일이 다가왔다.

나는 초조해진 나머지 어머니를 추궁했다.

뭐예요. 아직도 안 오잖아요? 역시 어머니가 거짓말을 하신 거죠? 제 말이 틀립니까? 일본에 내 호적이 있을 턱이 없어요. 언제까지 저를 속이실 작정이세요?”

어머니는 잠자코 계시더니 책상 서랍 속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나는 빼앗듯 낚아채어 들여다보았다. 호적 등본이었다.

호주 다우치 치코(田內 致浩), 처 치즈코(千鶴子), 장녀 키요미(淸美), 장남 모토이(), 차녀 무쿠미(睦美), 그리고 공란. 다우치 모토이? 이게 나란 말인가? 나는 픽 웃었다. 게다가 동생 영화는 어떻게 된 거야? 왜 빠져 있는 거지?

전후(戰後) 태어난 동생은 미처 호적에 올리지 못했다는 설명이었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이따위 엉터리 호적에 제가 속을 줄 알아요? 다우치? 저는 이런 성() 싫습니다.”

호적 등본을 내팽개치듯 버리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거리고 산길이고 발길이 가는 대로 무작정 걸었다. 주위에 어둠이 내렸을 때 나는 산을 내려가 원으로 돌아왔다.

범치 형이 다가왔다. 나는 태연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 것 같아? 하하, 난 그저, 나는 내 왕국의 왕이야. 이 세상 어디도 속해 있지 않은 나만의 왕국의 국민이자 임금이지.”

계속 감을 잡지 못하는 범치 형을 붙들고 나는 내 신상에 관해 털어놓았다. 이야기 도중 격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눈물을 쏟으며 흐느껴 울었다.

나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범치 형이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기야. 그래도 너는 행복한 놈이야. 나를 봐. 국적도 호적도 아무것도 없잖아. 내게는 저 다리 밑에서 나를 주워 온 원장 아버지밖에 없단 말이야.”

채 말을 맺지 못하고 이번엔 형이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형의 눈물을 보는 순간 이 지구, 이 세상이란 것이 정말이지 너무나 크고 넓고 불가사의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그토록 감격한 기억이 없었다.

범치 형은 눈물을 그치고 그 억센 팔로 내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어머니 계신 곳으로 가자. 그리고 우리 어머니를 위로해 주는 거다. 이 세상에서 제일 외로운 분은 바로 우리 어머니란 말이야.”

나는 형의 얼굴을 올려 보았다. 하늘에는 조각달이 떠 있었다. 쏟아지는 별빛이 내게 미소를 보내오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한 태도였다. 나는 그날 밤 어머니의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어머니!”

다시 한번 불러보았다.

 

 

어머니의 반생(半生)

 

대학 입학 수속이 무사히 끝났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일본인이 어째서 이 학교를 지원했냐고 교수님이 물으시면 뭐라 대답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아무 질문도 안 하셨다. 친구들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나도 차츰 나의 국적을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윤기란 이름을 가진 대한민국의 아들로서 여느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조국의 운명을 걱정하고 토로했다.

한일 관계가 험악해졌다. 대학생들이 곳곳에서 다시는 일본에 나라를 팔지 말라고 시위할 때 나 역시 동참했다. 그런 때 어머니가 사전 연락도 없이 서울의 비좁은 하숙방을 찾아왔다. 학비를 건네주고 곧 돌아가시려니 생각했는데 어머니는 내 기색을 살피며 말했다.

 

 

(다음 36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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