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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헌 목사 (북교동교회) |
우리는 평가받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인사고과로, 학교에서는 등수로, 식당과 가게는 별점으로, 우리가 올리는 글 한 줄은 '좋아요' 숫자로 평가받습니다. 손가락 하나로 누군가에게 별 다섯 개를 주기도 하고, 별 하나로 누군가의 하루를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더 타인의 시선 앞에 작아집니다. 잘 보이려고 애쓰다 지치고, 인정받지 못하면 무너집니다. 한 철학자는 이 시대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하다 결국 탈진해 버리는 '피로사회'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남의 법정, 나 자신의 법정, 세상의 법정 앞에서 늘 피고석에 앉은 채 살아갑니다.
그런데 가장 무서운 법정은 의외로 내 안에 있습니다. 남이 주는 별점은 무시할 수라도 있지만, 내가 나에게 매기는 점수는 피할 곳이 없습니다. "이것밖에 안 되나", "또 실수했구나", "다른 사람들은 다 잘하는데 나만 뒤처졌다." 마음속 검사는 쉬지 않고 기소장을 읽어 내려가고, 판사석에 앉은 또 다른 내가 매번 유죄를 선고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평가를 피하려 애쓰다가 결국 스스로를 가장 혹독하게 평가하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사도 바울도 평가의 한복판에 서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그를 비교하고 깎아내리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고전 4:3–4). 바울은 남의 법정에서 내려왔고, 자기 자신의 법정에서도 내려왔습니다. 평가가 없어서가 아니라, 최종 판결을 내리실 분이 따로 계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최종 법정의 판결은 이미 내려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우리의 점수가 높아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낮은 점수와 유죄 판결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담대하게 묻습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 누가 정죄하리요"(롬 8:33–34).
평가가 사라진 세상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내일도 우리는 고과를 받고, 점수를 받고, 누군가의 별점 앞에 설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 평가가 나의 존재를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을 압니다. 최고 법정에서 "의롭다" 하신 판결을 받은 사람은 더 이상 세상의 법정에서 떨며 살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호남기독신문 애독자 여러분, 이제 피고석에서 내려오십시오. 그 자리에서 내려온 사람만이 비로소 자유롭게 일하고, 넉넉하게 실패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너그러운 별점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평가는 이미 끝났습니다. 사랑받는 자녀라는 평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