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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제1부 어머니는 바보야 38회

2026-05-14 10:47 | 입력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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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
윤기
전) 목포공생원 원장
공생복지재단 회장
- 1942년 목포 출생
- 중앙신학교(現 강남대학교) 사회사업학과를 졸
- 아동복지시설「목포공생원」의 원장
- 정신지체장애인시설「공생재활원」을 설립
- 한국사회복지사협회 부회장‧회장(1987年~2001年)을 역임
- 1989년 일본 최초의 재일동포를 위한 노인복지시설「고향의 집」을 건립
- 1978년 제22회 소파상등 수상다수
- 현재 일본 사회복지법인「마음의 가족」이사장
- 저서는《김치와 우메보시》, 역서는《괴짜총리 고이즈미, 흔들리는 일본》 《고령사회 이렇게 살아보세》가 있다


공저자 윤문지
공저자 윤문지(타우치 후미애)
공생복지재단 이사장

-1949년 일본 오사카 출생
- 쿄토 도시샤(同志社)대학 사회복지학과를 졸
- 1972년, 한국 목포로 건너와 목포공생원 생활지도원 역임
- 현재 일본 사회복지법인「마음의 가족」 이사, 사회복지법인 윤학
자공생재단 이사, 사회복지법인 공생복지재단 이사장으로 활동,
-제3회 여성휴먼다큐멘터리 대상에《양이 한 마리》로 입선
- 1982년《나도 고아였다》로 일본 크리스천신문 제5회 아카시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


해방을 맞았다. 2차 세계 대전은 일본의 전면적인 패배로 끝나고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했다. 1945년 8월 15일, 남편의 나라 한국은 승자가 되고 그제까지 절대 지배자로 군림하던 일본인은 하룻밤 사이에 패자로 처지가 바뀌었다. 치즈코는 다른 많은 이국처(異國妻)와 마찬가지로 고국으로 철수할 것인가. 남편을 따라 잔류할 것인가로 불면의 밤을 보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입장이 역전되자 이제까지 쌓여왔던 민족 감정이 봇물 터지듯 폭발함은 당연지사였다.
일본 여자란 이유 하나로 치즈코의 주위에는 험악한 공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그때 치즈코에게는 이미 두 아이가 있었고 세 번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노모(老母)는 고향 고치로 돌아가게 되었다.
겉으론 아무 말씀이 없으셨지만 될 수 있으면 함께 귀국해 주길 바라는 눈치셨다.
윤 원장은 아내에게 말했다.
“당신의 고민은 잘 알아. 설사 당신이 귀국을 결심했대도 나는 원망하지 않소. 하지만 당신이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남이 든다면 난 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을 지키겠소.”
치즈코는 이 이상 마음의 동요를 갖지 않기로 했다.
일본인 처 중에는 미묘한 상황에 놓여 번민하던 끝에 이혼을 당하는가 하면 그날로 생계가 곤란해진 사람도 많았다 설사 남편의 이해가 있다 해도 시댁 식구들이 일본 여자는 어깨가 좁다는 둥 트집을 잡아 남편까지 시달림을 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치즈코의 마음을 밑바닥부터 뒤흔들어 놓는 중대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인을 아내로 둔 윤치호를 친일파라 하여 보이지 않는 탄압이 시작된 것이다. 그것이 표면화된 날이 왔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윤치호 암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우연히 원아 몇 명이 듣게 되었다. 원아들은 그 길로 산을 넘어 공생원에 달려와 외출 중인 윤 원장이 오늘 밤엔 원에 돌아오셔선 안 된다고 치즈코에게 알렸다. 절박한 위기 사태에 발끝부터 떨리고 공포와 함께 배신감으로 가슴까지 떨려왔다.
이날까지 남편은 자신을 위해선 어떤 일도 벌인 적이 없었다. 매년 정월 초하루 전날이면 기다렸다는 듯 언덕 위에 올라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 집을 살펴 그 집에 떡살을 갖다 주던 그가 아닌가? 그런 남편에게 죽어 마땅한 잘못이 있단 말인가? 단지 일본인 아내를 두었다는 사실만으로 남편은 생명을 위협받고 있었다. 공포감 때문에 도저히 진정할 수가 없었다. 그런 치즈코에게 아이들이 위로해 주었다.
“어머니, 어머니가 일본인이래도 우리 어머니임엔 변함없어요. 우리도 가만히 있진 않을 거예요.”
큰 아이부터 작은 아이까지 손에 막대기와 돌을 들고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의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살의를 잃고 물러갔다.
“고맙다. 고마워.”
치즈코는 아이들을 부둥켜안고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그녀는 전 생애를 이 아이들을 위해 바칠 각오를 굳혔다.
수년이 지나 대망의 강당이 완공되었다. 공생원도 20주년을 맞이했다. 한때 윤 씨 부부를 살해하려 음모를 꾸몄던 마을 사람들이 2m 높이의 ‘공생원 20주년 기념탑’을 세워주었다.

어머니는 여기까지 이야기하고는 말씀을 중단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얼굴을 주시했다. 어머니는 울고 계셨다.
“후회하고 계세요?”
나는 확인하듯 물었다.
“모두가 하나님의 뜻이었어.”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운명?’
나는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그것은 불가항력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운명이란 한마디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와 결혼하신 걸 후회하지 않으세요?”
나는 어머니의 마음을 거듭 확인하고 싶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물음에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의지가 강한 분이셨어. 그 숱한 사람을 이끌고 감동시킬 수 있는 힘을 갖고 계셨던 거야.”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어머니를 동정해서가 아니었다. 나약하게만 보이던 어머니가 사실은 누구보다도 강한 분임을 그 순간 확인했기 때문이다.

(다음 39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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