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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완 장로 편집,발행인 박정완 장로 (목포중부교회) |
연이틀, 전혀 다른 성격의 두 회집 현장을 마주했다. 한곳은 유명 가수가 출연해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던 축제장이다. 다음 날 마주한 다른 한곳은 지역의 현안을 외치는 궐기 집회 장소였다.
축제장은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사람들은 오직 ‘즐거움’이라는 하나의 이유로 뭉쳐 있었다. 반면 하루 차이로 방문한 집회 장소는 한결 선선해진 날씨 속에서 진행됐다.
축제장의 청중은 무대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좋아하는 가수가 등장하자 극도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너나 할 것 없이 입을 모아 화음을 맞춰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 거대한 ‘떼창’ 속에서 사람들은 대단한 성취감과 하나 됨을 느끼는 듯했다. 즐거움의 도가니는 뜨겁기만 했다. 허기가 지는 줄도 모른 채, 그저 거대한 인파와 음악에 매료되어 모두가 하나로 엮이고 있었다.
두 번째 도심 광장에서 열린 궐기대회장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그곳에는 지역현안의 절박함과 간절함이 깊게 묻어 있었다. 연사들이 단상에 올라 제각각의 논리를 전개하며 열변과 성토를 이어갔다. 대형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소리에는 분노도 섞여 있었다.지역을 향한 간절한 바람말이다. 그러나 집회장 주위에는 운동복이나 평상복 차림으로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이 더 많았다. 궐기대회의 간절함 따위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저마다의 일상을 누릴 뿐이었다. 곁에 있지만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딴 살림’의 모습이었다.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반경과 온도차는 이토록 분명하다. 즐거움에는 흥과 에너지가 있다. 간절함에는 절규와 무게가 있다. 이틀 사이, 극과 극의 두 집회를 바라본 노신사 신앙인은 과연 무엇이라 답해야 할까?
유명 가수의 노랫말에 떼창으로 응수하며 삶의 시름을 털어내는 행위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그 뜨거운 환호 뒤에는 지친 일상을 다시 살아내게 하는 아름다운 삶의 에너지가 숨어 있다. 즐거움으로 엮인 강한 의지의 끈은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 된다.
반면, 결연한 표정으로 지역사회를 위해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는 연사의 사자후(獅子吼)는 그냥 지나치기 쉬운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그것은 당장의 즐거움은 아닐지라도 “함께하는 지역사회, 아름다운 성장과 발전”을 불러오는 소중한 계몽의 울림이다. 타인의 간절함에 귀를 기울이고 상생을 고민할 때, 비로소 사회와 공동체에는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정신적 지주가 세워진다.
신앙의 눈으로 바라본 두 현장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 축제장의 ‘즐거운 결집’에서 얻은 삶의 활력과, 광장의 ‘간절한 울림’에서 깨달은 공동체적 책임감은 모두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양분이다.
즐거움 뒤에는 앞으로 나아갈 전진의 동력이 있고, 간절함 뒤에는 시대를 일깨우는 시대정신이 있다. 이제 우리는 이 두 가지 마음가짐을 모아 함께 일어나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기쁨으로 마음을 열고, 타인의 아픔과 간절함에 깊이 공감하며, 다음 세대를 위한 넉넉한 신앙과 시대정신을 심어줄 때다.
서로를 향한 관심과 사랑의 나무를 심을 때, 비로소 후회 없는 발전과 상생의 꽃밭이 피어날 것이다. 그 거룩한 결실을 품고, 더욱 아름답고 복된 내일을 향해 다 함께 발걸음을 내딛기를 소망한다.